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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낙서장

고구려에 대한 그냥 끄적거림...

그냥, 혼자서 생각해보던 것들 몇가지 정리...

1. 고구려의 민족 구성은 우리의 조상과 여진족, 말갈족이라고 불리우던 각 부족들간의 집단 연합체로 보임.

2. 주요 지배층은 우리 조상이었고, 광개토왕/장수왕 등이 평양성을 중심으로 한성으로 내려온 이유가 나름 있어 보임... ( 부족들간의 영역과 사는 방식이 좀 달랐던 것 같음. )

3. 고구려 멸망후 분리된 부족, 발해에 속한 부족, 통일 신라에 귀속한 부족등이 나뉜것 같음.

4. 고구려 사회는 부족간의 연합으로 제국의 형태의 기본 틀은 구성이 되었으나, 내부 갈등을 완전 해소하지 못한 상태의 국가 형태를 이룬 것 같음.

5. 실제 국가의 이름은 '고려'였으며, 학계에서 '오래된 고려'라는 뜻의 고구려를 사용함. 당시의 이름은 고려가 맞는 것 같음.

6. 발해의 이름도 '대진국'이라고 불리웠음. 

7. 고구려는 왕권이 강화되고 봉건제 형태로 전환되는 것은 완전하게 진행된것 같지 않음.

8. 당시, 중국도 대부분 각 부족별 지배 세력이 유지하는 형태가 많았음.

9. 장수왕 이후 6세기에 왕족간의 내전이 고구려의 국운을 결정하는 가장 큰 내분이었고, 그 당시 중국은 수나라 통일되고 그 이후 중국과의 전쟁에서 국력을 소모함. ( 수,당 전쟁으로 피폐해지고, 왕권 강화에는 실패한듯. )

10. 고구려는 부족 연맹체에서 시작하여 관료조직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거친것 같기는 하나, 완전한것 같지 않음.

11.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고구려를 자신의 역사로 포괄하려는 움직임이 큼. 대한민국의 반발이 있는 이후 고구려보다는 '발해', '대진국'에 더욱더 집중하고 있음.

12. 고구려 멸망후 대조영이 건국한 발해는 '말갈족'이 세운 '진국'이라는 형태로 출발한 것은 맞는 것 같음.

13. 발해와 '말갈'은 음성학적으로 동일음이라는 이야기도 있음.

14. 발해를 고구려의 연장선으로 보는 것은 맞는 것 같으나. 부족연맹체의 형태에서 변환된 것인지, 지배층에 의해서인지에 대해서는 모호한 부분이 있는 것 같음.

15. 발해는 '고구려의 옛 땅을 수복하고, 부여의 전통을 이어받았다'라고 함. ( 무왕/문왕 )

16. 후에 금나라는 금의 조상을 말갈이라고 칭하고, 말갈은 고구려에 예속된 부족으로 본듯함. 성씨는 대씨라고 함. ( 대조영은 말갈족? )

17. 발해사는 중국 동북공정의 주요한 연구 대상으로 인지하고 있음. 중국은 모든 소수 민족들을 포함한 국가 형성을 이루는 것에 대해서 중심을 잡고 있으므로, 중국사의 일부로 이야기하고 있음.

18. 김부식의 삼국사기에서는 발해를 말갈의 발해, 발해말갈, 북국등으로 서술하고 있으며, 고조선, 부여, 발해등을 우리의 역사로 인지하고 있지 않음. ( 사실상,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중국측 인용된 기준으로 작성된 역사서라고 봐야 함. )

19. 발해는 멸망후 거란족에 의해서 통치되었음.

20. 발해가 백두산 화산 폭발을 기점으로 멸망한것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입증은 안됨. 중요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지도층 내분으로 인해서 멸망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대부분 학자들이 일치함.

21. 발해는 거란의 야율아보기의 요나라에 멸망함.

22. 그 이후 요나라는 동란국을 통해 지배했음.

23. 발해 유민운동이 1116년까지 이어져서, 장안국, 흥요국, 대발해국등이 존립했으나, 이들 나라들은 요나라와 금나라에 병함됨. ( 이 내용등이 중국측의 동북아 공정의 주요 키워드임. )

24. 고구려->수복운동->발해->요나라 침공이후 분리->멸망의 순서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