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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이야기들

[펌글] 창조론자들의 넌센스에 대한 15가지 답변

창조론자들의 넌센스에 대한 15가지 답변

15 ANSWERS TO CREATIONIST NONSENSE ,

 

By: Rennie, John, Scientific American, 00368733, Jul2002, Vol. 287, Issue 1

"진화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진정한 과학을 난도질해서 창조론이 설 자리를 만드려고 애쓰지만, 그들의 주장은 아무 근거가 없다."


찰스 다윈이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의 이론을 146년전에 소개했을 때, 당시의 과학자들은 이에 대해 심한 논쟁을 벌였다. 그러나 고생물학, 유전학, 동물학, 분자생물학, 기타 다른 분야에서 얻어진 수많은 증거들이 점차 쌓아가면서 진화가 사실이라는 명제는 이제 합리적인 의심을 넘어서는 정도로 탄탄히 확립되었다. 오늘날 어디에서나 이 전쟁은 승리로 매듭지어졌다. 대중의 상상력 안에서만 제외하면.

부끄럽게도, 지금 21세기에, 세계에서 가장 과학이 발전된 나라에서, 아직도 창조론자들은 진화이론은 근거가 빈약한 오류투성이의 팬터지에 불과하다고 정치가와 판사들과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설득을 하고 있다. 그들은 "지적 설계" 같은 창조론적 이론들을 진화이론의 대안으로 과학 시간에 교육시키게끔 로비를 한다. 이 글이 쓰여지고 있는 지금, 오하이오주 교육국에서는 그러한 변화를 승인할 것인지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의 법학교수이자 '심판대위의 다윈'의 저자인 필립 존슨과 같은 반진화론자들은 그들이 지적 설계 이론을 과학 교실안에서 신에 대한 토론이 벌어질 수 있게끔 교실문을 열어젖히는 "쐐기"로 활용하고 있다고 인정한다.

겹겹이 포위된 교사들과 기타 다른 사람들은 점점 더 자주 진화론을 지지하고 창조론을 논박해야하는 위치에 서게 될 것이다. 창조론자들이 쓰는 논거들은 대개 허울만 그럴듯할 뿐 진화에 대한 오해나 (혹은 알면서도 일부러 늘어놓는 새빨간 거짓말로) 채워져있다. 그러나 그들이 개발하는 논거들의 수나 다양성은 진화론에 대해 비교적 잘 알고 있는 사람들조차 밀리게 할 정도다.

그들에게 답하기 위해서, 다음의 목록들은 진화를 부정하는 '과학적인' 논거 가운데 가장 흔한 논거들을 검토한 것들이다. 더 알고 싶어하는 독자들을 위한 소스들도 기록하였고, 왜 창조과학이 교실안에서 교육되면 안되는 지 또한 설명하였다.

1. 진화는 단지 이론일 뿐이다. 사실이나 과학적 법칙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초등학교 시절 이론은 확실성의 위계에서 중간쯤에 위치한다고 배웠다. 이론은 가설보다는 위에 있지만 법칙보다는 아래에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이론이란 용어를 이렇게 사용하지 않는다. 미국 국립 과학원(National Academy of Sciencees)에 따르면, 과학 이론은 "사실, 법칙, 추론, 그리고 검증된 가설들을 포괄할 수 있는, 자연 세계의 어떤 측면에 대해 잘 확립된 설명"을 말한다. 어떤 이론이 아무리 견고하게 뒷받침된다고 해도 법칙으로 승격되지는 못한다. 법칙은 과학자들에게는 자연에 대한 일반화된 기술(description)을 뜻하며 그 성격상 이론과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과학자들이 진화라는 이론에 대해 이야기할때 - 원자 이론이나 상대성 이론을 이야기할때도 마찬가지지만- 그것이 가진 확실성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이론'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진화를 하나의 이론으로, 즉 변화를 수반하는 상속에 대한 이론이란 뜻으로서뿐만 아니라, 진화라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다. NAS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확증되어 왔으며 모든 실질적인 의도에서 '진실'이라고 간주되어지는 관찰'이라고 정의한다. 화석 기록을 비롯해 무수히 많은 증거들은 유기체가 오랜 시간에 걸쳐 진화해왔음을 입증해준다. 아무도 이러한 변화를 목격하지는 않았지만, 이 모든 간접적인 증거들은 뚜렷하고, 명명백백하며 매우 설득적이다.

모든 과학들이 간접적인 증거에 자주 기대곤 한다. 예를 들어 물리학자들은 아원자 입자들을 직접 관찰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서 이 입자들이 희뿌연 공간을 통과할 때 남기는 흔적들을 관찰한다. 아원자 입자를 직접 관찰하지 못한다고 해서 물리학자들이 내리는 결론이 흔들리는 것은 아니다.

2. 자연선택 이론은 순환 논증으로 이루어져 있다. 최적자(fitttest)는 살아남는 이들이고, 살아남는 이들이 최적자로 간주된다.

"최적자의 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은 자연선택을 설명하는 일종의 편리한 어구이며, 보다 정확한 용어는 "차별적인 생존및 번식률"이다. 즉, 어떤 종이 더 적자이고 덜 적자라고 구분하는게 아니라, 개체가 주어진 환경하에서 얼마나 많은 자손들을 남길 수 있는가를 기술하는 것이다. 나무열매의 씨앗들을 쉽게 구할 수 있는 어떤 섬에 부리가 작은 대신 빨리 번식하는 핀치 종한 쌍과 부리가 큰 대신 느리게 번식하는 핀치 종 한 쌍을 도입해보라. 몇 세대 안으로 빨리 번식하는 종이 먹이를 더 많이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큰 부리가 딱딱한 열매껍질을 더 쉽게 깨는데 도와준다면, 느리게 번식하는 종이 더 유리할 것이다. 갈라파고스 군도의 핀치새들을 대상으로 한 유명한 연구에서, 프린스턴 대학의 피터 그랜트 박사는 이러한 개체군내의 변동을 자연상태에서 실제로 관찰하였다.["핀치의 부리"라는 책이 우리 나라에도 번역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적응적인 특질이 생존 그자체로 정의되는 것은 아니란 점이다. 큰 부리는 씨앗들을 깨어내는데 잘 적응되어 있다. 어떤 특정한 환경하에서 생존가능성을 실제로 높여줄지 여부와 관계 없이.

[또 다른 예로는 겨울잠을 자는 개구리가 초봄에 용감하게 일찍 나올 것인가, 혹은 추위에 겁을 먹고 늦게 나올것인가라는 문제를 들 수 있습니다. 만약 어떤 개구리 종이 사는 환경이 겨울이 매우 길다면, 이 종에서는 "겁많음"이라는 형질이 "용감무쌍함"이라는 형질보다 더 생존에 유리해서 결국 겁많은 개구리들이 보편적으로 널리 퍼지게 되겠지요. "적자"라고 하면 흔히 힘세고 건강하고 뛰어나고...뭐 이런 형질들만 연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잘못입니다].

3. 진화론은 검증할 수도 없고 반증될 수도 없으므로 비과학적이다. 과거에 일어났기 때문에 지금 현재 관찰될 수도 없고 다시 재현될 수 없는 사건들에 대한 주장을 펼치기 때문이다.

진화를 거부하는 이 과감한 논거는 진화생물학이 소진화와 대진화라는 두가지 세부 영역으로로 나누어짐을 간과하고 있다. 소진화는 시간에 따른 종내의 변화를 살핀다. 즉 새로운 종으로 분화하게 되는 종분화를 초래하는 변화들을 살핀다. 대진화는 어떻게 종위의 상위분류군들이 변화하는가를 다룬다. 대진화를 뒷받침하는 증거들은 주로 화석 기록과 DNA 비교등이며 이를 이용해 현재의 다양한 유기체들이 서로 어떤 유연관계를 가지는가를 재구성한다.

대다수 창조과학자들은 소진화가 실험실에서 행해진 실험과 (세포, 식물및 초파리 연구등등) 야외에서 행해진 관찰(갈라파고스 군도에서 부리의 모양의 진화를 기록한 피터 그랜트의 연구 등등)에 의해서 뒷받침되고 있음을 인정한다. 자연선택, 그리고 기타 메커니즘 - 염색체의 변화, 공생, 혼성화 등등 - 들에 의해서 개체군은 시간에 따라 변화하게 된다는 것이다.

대진화 연구는 그 역사적 성격상 직접적인 관찰보다는 화석과 DNA를 통한 추론에 의존한다. 진화생물학이나 천문학, 지질학, 고고학 같이 역사적인 성격을 띠는 과학에서도 가설은 여전히 과학적 방법으로 검증가능하다. 즉 가설로부터 얻어지는 예측들이 실제의 물리적 증거들과 일치하는지 확인하거나, 지금껏 몰랐던 사실들을 얼마나 잘 예측해주는지 확인함으로써 가설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진화이론은 인간의 가장 오래된 조상(약 5백만년전)과 해부학적으로 완전히 현대인류(약 10만년전) 사이에 점점 생김새가 영장류에서 현대 인류로 가까와지는 원인(hominid)들의 연속체가 존재했으리라고 시사한다. 이는 실제로 화석기록을 통해 확인되었다. 뿐만 아니라 진화이론은 현대 인간의 화석이 쥐라기 시대의 지층(65만년전)에서는 결코 발견될 수 없다고 말해준다. 실제로 진화생물학은 이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상세한 예측들을 내오놓고 있으며 과학자들은 끊임없이 이 예측들을 실제로 검증하고 있다.

진화는 또한 여러가지 방식으로 반증될 수 있다. 만일 무기물질에서 매우 복잡한 생명체가 단 하나라도 갑자기 저절로 생겨나는 광경이 관찰된다면 진화는 반증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화석상에 남아있는 최소한 몇몇 생물들이 이렇게 순식간에 저절로 생겨난 흔적을 보여준다면 진화는 반증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껏 누구도 이러한 증거들을 내어놓지 못했다.

반증가능성을 과학의 핵심 특성으로 여기게 된 흐름은 1930년대 철학자 칼 포퍼로부터 유래했다. 그러나 그의 판단기준이 너무 엄격해서 명백히 과학적인 여러 활동들을 너무 많이 제외하게되는 비판을 받게 되었으며, 오늘날 과학철학자들은 그의 원칙을 좀더 유연하게 넓히려는 경향이 있다.

4. 점점 더 많은 과학자들이 진화가 옳다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진화론의 지지자들이 점점 엷어지고 있다는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동료 심사를 받는 어떤 생물학 저널이라도 들추어보라. 진화를 근본적인 토대로 삼아 진화이론의 세부 가설들을 검증하는 수많은 논문들을 만나게 될것이다.

반대로, 진화를 논박하는 진지한 과학적 연구성과물은 전혀 없다. 1990년대 중반에 워싱턴 대학의 조지 길크리스트는 수천개의 생물학 저널들을 검색해서 지적 설계 이론이나 창조 과학에 대한 논문이 실린게 있는지 살펴보았다. 수천개의 과학 논문들 가운데 그는 단 한 편도 찾을 수 없었다. 지난 2년동안에 루이지애나 대학의 바바라 포리스트와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 대학의 로렌스 크라우스가 서로 독립적으로 행한 두 개의 조사도 동일한 결론에 다다랐다.

창조과학자들은 폐쇄적인 과학자 공동체가 자신들의 증거를 싣기 거부한다고 불평한다. 그러나 네이처나 사이언스, 그리고 다른 일류 저널의 편집자들에 따르면, 반진화론을 주장하는 원고가 접수되는 자체가 극히 드물다고 한다. 몇몇 반진화론적 입장의 학자들이 진지한 저널에 논문을 싣기는 했다. 그러나 그런 논문들 가운데 진화를 직접적으로 논박하거나 창조론적 주장들을 적극적으로 펼치는 것들은 거의 없다. 기껏해야 그것들은 몇몇 진화적 문제들이 미해결되었거나 풀기 어려운 것이라고 이야기할 뿐이다. [주: 주로 과학철학이나 사이비과학 연구에 관련된 저널들입니다. 생물학 같은 과학저널에는 한편도 싣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요약하자면, 창조론자들은 과학자 사회로 하여금 그들의 주장을 진지하게 검토하게 할만한 과학적 근거를 제공하지 않는다.

5. 진화생물학자들 사이에 의견의 불일치가 일어나는 것만 봐도 얼마나 진화론에 과학적 토대가 빈약한지 알 수 있다.

진화생물학자들은 여러 다양한 주제에 대해 열정적으로 논쟁한다. 어떤게 종분화가 일어나는가, 진화적 변화가 일어나는 속도는 얼마인가, 조류와 공룡의 유연관계는 어떻게 되는가, 네안데르탈인은 현대 인류와 구별되는 독자적인 종이었는가 등등, 이 외에도 수없이 많다. 이러한 논쟁은 다른 어떤 과학분야에서도 마찬가지로 일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생물학자들은 진화를 역사적 사실이자 중심 원칙으로 보편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몇몇 부정직한 창조론자들은 과학자들의 주장을 문맥을 고려한채 툭 떼어다가 학자들간의 의견 불일치를 맘대로 과장하고 곡해하곤 한다. 하버드 대학의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의 작업에 대해 들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그가 단속 평형 모델을 엘드리지와 함께 만들었다는것 뿐만 아니라, 오늘날 진화이론을 가장 훌륭하게 대중화한 수호자 가운데 한 명임을 알고 있다. (단속 평형설은 대다수 진화적 변화들이 지질학적으로 극히 짧은 시간 동안에 - 그래도 수백세대에 이르는 긴 세월이긴 하지만 - 일어났다는 전제하에 화석 기록상의 패턴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하지만 창조론자들은 굴드의 웅장한 장광설에서 몇몇 어구들을 떼어다가 조립해서 마칙 그가 진화 자체를 의심하는 것처럼 보이게 해놓고 기쁨을 만끽한다. 그리고 그들은 단속 평형설이 마치 새로운 종이 하룻밤만에 생겨나거나 파충류의 알에서 새끼새가 깨어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론이라고 말한다. [하도 굴드한테 당한 탓인지 요즘 창조과학자들은 굴드를 욕하더군요. 좋아할 때는 언제고]

권위있는 과학자가 진화를 부정하는 듯한 코멘트를 인용한 글을 접하게 되면, 그 코멘트가 어떤 맥락에 행해졌는지 봐야겠다고 대꾸하라. 거의 틀림없이, 진화 자체가 의심받았다는 인상은 헛것에 불과했다는게 밝혀질 것이다.

6. 인간이 원숭이로부터 유래했다면, 왜 아직도 원숭이들이 남아있는가?

이 까무라칠정도로 흔한 논증은 진화에 대한 여러 무지함을 드러낸다. 첫번째 잘못은, 진화론은 인간이 원숭이로부터 유래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진화론은 인간과 원숭이가 공통 조상을 가진다고 주장할 뿐이다.

좀더 심각한 잘못은 이 논증이 마치 이렇게 묻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아이가 어른으로부터 유래했다면, 왜 아직도 어른이 있는가?" 새로운 종은 기존의 종이 갈라지면서 생겨난다. 즉, 원래의 개체군으로부터 작은 개체군이 떨어져 나와서 다시 상호교배가 불가능할만큼 변화가 진행되었을때 종분화가 되는 것이다. 원래의 종은 새로운 종의 운명과 아무 상관 없이 계속 영속할 수도 있고, 바로 멸종할 수도 있다.

7. 진화론은 생명이 지구상에 어떻게 처음 출현했는지 설명할 수 없다.

생명의 기원은 아직 상당한 미스터리이다. 그러나 생화학자들은 어떻게 원시적인 핵산과 아미노산, 그리고 기타 생명 구성물질들이 처음 생겨나서 자기복제및 자기 충족적 단위로 조직화했는지에 대해서 상당한 지식을 쌓았다. 천문화학의 연구에 따르면 이들 화합물들이 아마 우주공간에서 생겨나서 혜성의 형태로 지구에 낙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이 시나리오는 어떻게 이들 화합물들이 지구가 아직 어렸던 시기에 생겨날 수 있었는가에 대한 잠정적인 해답을 제공한다.

창조론자들은 때때로 과학이 생명의 기원을 현재로서는 완전히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을 내세워 진화론의 모든 주장을 폐기하려 애쓴다. 그러나 설령 지구상의 생명이 비진화적인 기원을 가졌다 할지라도 (예컨대, 외계인이 수십억년전에 최초의 세포를 지구에 이식했다고 해도), 그 이후 이루어진 진화라는 역사적 사실은 수없이 많은 대진화및 소진화 연구에 의해 탄탄하게 지지될 것이다.

8. 단백질처럼 복잡한 물질이 순전히 우연에 의해 생겨난다는 주장은 수학적으로 불가능하다. 하물며 살아있는 세포나 인간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우연도 진화에서 일정한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무작위적인 돌연변이에 의해 이전에 없던 새로운 형질이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러나 진화는 유기체나 단백질 혹은 기타 실체들을 만들기 위해 우연에 전적으로 기대지는 않는다. 사실은 정반대다. 진화를 일으키는 주요한 기작인 자연 선택은 "바람직한"(적응적인) 특성들을 보전하고 "바람직하지 않은"(비적응적인) 특성들을 제거해서 비무작위적인 변화를 만들어낸다. 선택압이 일정하게 작용하는한, 자연 선택은 일정한 방향으로 진화를 추동하여 놀랄만큼 짧은 시간안에 정교하고 복잡한 구조를 만든다.

하나의 유비로써, 13개의 문자열로 이루어진 문장인 "TOBEORNOTTOBE"(죽느냐 사느냐) 를 생각해보자. 수백만 마리의 원숭이들이 각자 1초에 한 글자씩 아무 자판이나 두드린다고 할때, 26의 13제곱에 달하는 경우의 숫자들 가운데 이 문장을 찾기까지에는 최대한 78,800년이 걸린다. 그러나 1980년대에 글렌데일 칼리지의 라차드 하디슨은 아무 문장이나 무작위적으로 생산하되 우연히 어떤 위치의 문자가 맞아떨어진 자리는 보존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즉 햄릿의 대사에 가까와지는 프로그램인 셈이다). 평균적으로 이 프로그램은 겨우 336회만에, 시간으로는 90초 이내에 위 문장을 똑같이 만들어냈다. 더더욱 세익스피어의 희곡 모두를 다시 만들어내는데 겨우 4일 하고도 반나절이 걸렸다!

9. 열역학 제 2법칙에 따르면 모든 계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무질서해진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세포가 생명이 없는 화합물에서 진화할 수는 없으며, 다세포 생명체가 원생생물에서 진화할 수도 없다.

이 논증은 열역학 제 2법칙에 대한 오해에서 기인한다. 만약 이 논증이 옳다면 무기물 결정들과 눈꽃송이들도 있어선 안될 것이다. 이들 역시 무질서한 성분들로부터 자연히 발생한 복잡한 구조들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열역학 제2법칙은 어떤 닫힌 계(어떤 에너지나 물질도 출입하지 않는 계)의 내부의 총 엔트로피는 감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엔트로피는 종종 무질서한 정도로 이해되는 물리학 용어이지만, 무질서라는 단어가 일상적으로 뜻하는 의미와는 상당히 다르다.

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열역학 제 2법칙은 어떤 계의 일부분은 그 엔트로피가 감소할 수도 있음을 - 다른 부분에서 그 감소분을 상쇄할만큼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면 -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지구 전체는 태양으로부터 빛과 열을 받아들이면서 점점 더 복잡해질 수 있다. 태양계 전체로 보면 태양의 핵분열에 따른 엄청난 엔트로피의 증가가 그같은 국소적인 엔트로피 감소를 상쇄하는 것이다. 단순한 생명체들은 다른 생명체들과 무기 물질들을 소비하면서 그 자신의 복잡성을 점점 증가시킬 수 있다.

10. 돌연변이는 진화이론을 구성하는 필수요소이다. 그러나 돌연변이는 사실 해로운 형질들만을 제거할 뿐이다. 돌연변이는 새로운 형질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정반대로, 점돌연변이(유기체의 DNA상의 특정한 위치에서 생기는 변화)에 의해 생기는 수많은 새로운 형질들이 보고된 바 있다. 일례로 항생제에 대한 박테리아의 저항성을 들 수 있다.

동물계에서 발생을 조절하는 유전자 패밀리인 호메오박스(혹스Hox) 패밀리에서 일어나는 돌연변이도 복잡한 형질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 혹스 유전자는 어디에 날개나 다리, 촉각이나 신체 체절들이 자라나야 하는지를 지정한다. 예컨대 초파리에서는 안테나페디아(Antennapedia)라고 불리는 돌연변이가 일어나면 촉각이 자라야할 부위에 다리가 생겨나서 자라난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다리는 물론 효과적인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러한 돌연변이 형질의 존재는 유전적인 실수에 의해서 장차 복잡한 형질로 발전할 수 있는 변이가 생겨나며, 여기에 자연 선택이 작용해서 나중에 쓰임새를 얻게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분자생물학자들은 유전적 변화를 일으키는 기작에는 점돌연변이외에도 다른 여러 기작들이 많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는 새로운 형질이 출현할 수 있는 길이 더 많이 있음을 뜻한다. 예컨대 유전자내의 기능적인 모듈단위들은 전혀 새로운 방법으로 잘라내서 다시 조합될 수 있다. 유전자가 통째로 유기체의 DNA상에서 우연히 새로 복제될 수도 있으며, 이 새로 복제된 단위는 자유로이 돌연변이를 일으켜 새롭고 복잡한 형질을 지정하는 유전자로 발전할 수 있다. 다양한 분류군들의 DNA를 비교분석한 결과, 혈구 단백질내의 글로빈 패밀리도 지난 수십만년동안 이러한 방식으로 분화되어 왔음을 알 수 있었다.

11. 자연선택이 소진화를 설명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새로운 종의 기원과 종보다 높은 수준의 생명이 출현하는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진화생물학자들은 어떻게 자연선택이 새로운 종을 낳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 활발하게 연구했다. 예를 들어, 하버드 대학의 에른스트 마이어가 제안한 이소성(allopatry) 모델에 따르면, 일단의 개체군이 그가 속한 종내의 다른 개체들과 지리적으로 격리되면 이전과 다른 새로운 선택압을 받게 된다. 이 격리된 개체군내에서 일어난 변화는 시간에 따라 축적된다. 이러한 변화들이 쌓여서 결국 이 분리된 개체군이 원래의 집단과 더 이상 상호교배할 수 없게 되는 순간이 오게 된다. 이 개체군은 이제 생식적으로 격리하게 되어 장차 새로운 종이 될 수 있다.

자연선택은 진화를 일으키는 메커니즘 가운데 가장 잘 연구된 메커니즘이지만, 생물학자들은 다른 가능성에도 늘 열려있다. 생물학자들은 종분화나 유기체의 복잡한 형질을 만들 수 있는 특이한 유전적 메커니즘이 벌어질 가능성에 항상 관심을 기울인다. 앰허스트 소재 매사추세츠 대학의 린 마굴리스는 에너지를 내는 역할을 하는 미토콘드리아 같은 몇몇 세포내 소기관들이 고대의 생명체들간의 공생적 연합에 의해 진화했음을 보였다. 즉 진화생물학은 자연 선택이 아닌 다른 힘에 의해서 진화가 일어날 가능성을 언제든지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러한 힘들은 반드시 자연적이어야 한다. 그러한 힘들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바 없는 신비스러운 창조적 지능으로부터 유래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12. 누구도 새로운 종이 출현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종분화는 아마도 상당히 드문 현상이며, 종종 수백년이 소요된다. 더군다나 새로운 종이 막 형성되는 시기에 이를 발견해서 보고한다는 것은 더 어렵다. 생물학자들은 종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대해 자주 논쟁을 벌이기 때문이다. 가장 많이 활용되는 정의인, 마이어의 생물학적 종의 개념(Biological Species Concept)은 종을 생식적으로 상호 격리된 개체군으로 정의한다. 즉 자기 개체군에 속하지 않은 개체들과는 교배할 수 없는 개체들의 모임으로 말이다. 사실, 이 정의는 먼 거리를 두고 떨어져있는 개체들 사이에나 식물들에 대해서는 적용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게다가 화석으로 남은 생물들은 이들이 서로 교배가능했는지 알수 없다). 생물학자들은 그래서 유기체의 신체적 혹은 행동적 특질들을 활용해서 어떤 종에 속하는지 판별하는 기준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식물이나 곤충, 기타 간단한 동물들에서 뚜렷하게 벌어진 종분화 현상을 기록한 연구문헌들이 상당히 있다. 이러한 실험들의 대다수에서, 연구자들은 개체들에게 다양한 종류의 선택 (해부학적 차이, 짝짓기 행동, 서식처에 대한 선호나 기타 형질들에 대해서)을 가했더니, 외부 개체들과는 더 이상 교배하지 않는 새로운 개체 집단이 출현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예컨대, 뉴 멕시코 대학의 윌리엄 라이스( William R. Rice: 역주: 지금은 UC 샌타바바라에 있음)과 UC 데이비스의 조지 솔트(George W. Salt)는 초파리 한 종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각 초파리들의 특정한 국소환경에 대한 선호에 따라서 35세대동안 교배시킨 결과, 서로 다른 국소환경을 선호하는 초파리들끼리는 서로 교배를 못하는 새로운 개체군이 출현했음을 발견하였다.

 
13.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중간단계의 화석은 발견된 바 없다. 예를 들어 절반은 파충류이고 절반은 조류인 화석은 발견된 적이 없다.
 

사실은, 고생물학자들은 여러 분류군들 사이의 중간 형태를 띠는 화석들에 대한 수많은 실례들을 알고 있다. 가장 유명한 화석 가운데 하나가 시조새 화석인데, 이 것은 새에게서 특징으로 나타나는 깃털과 골격구조를 갖고 있으면서 공룡의 특징도 아울러 갖는 화석이다. 깃털이 난 다른 화석종도 수없이 많이 발견되었으며, 어떤 것들은 새에 더 가깝고 어떤 것들은 덜 가깝다. 왜소한 에오히푸스(Eohippus)로부터 현대의 말까지의 진화를 순차적으로 보여주는 일련의 화석들도 발견되었다. 고래는 땅에서 네 발로 걸었던 조상을 두고 있으며, 앰불로세투스(Ambulocetus)와 로드호세투스(Rodhocetus) 화석종들이 이러한 전환과정을 보여준다.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5월호에 실린 "바다를 지배했던 포유류"참조]. 화석으로 남겨진 조개들로부터 수백만년에 걸친 여러 연체동물의 진화를 짐작할 수 있다. "루시"라고 이름붙여진 오스트랄로피테쿠스종으로부터 현대 인간 까지의 변천을 보여주는 원인 화석들 20가지 이상이 존재한다 (이들 모두가 우리의 직계조상은 아니다).  

하지만 창조론자들은 이러한 화석 연구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시조새가 파충류와 조류 사이의 잃어버린 고리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시조새는 파충류적 특질을 지닌 멸종한 새의 일종이라는 것이다. 창조론자들은 진화론자들이 어떤 현존하는 분류군에도 속하지 않는, 기괴하고 괴상한 합성 괴물을 만들어내길 요구한다. 어느날 천지개벽이 일어나서 창조론자가 어떤 화석이 두 종 사이의 중간단계에 해당한다고 인정한다 할지라도, 그는 처음 한 종과 중간 종 사이의 가운데에 위치해야할 또다른 중간종 화석을 보여달라고 할 것이다. 이렇게 귀찮기 짝이 없는 요구는 무한정 반복될 수 있으며, 본질적으로 불완전한 화석 기록에 터무니없는 생떼를 부릴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자들은 분자생물학으로부터도 또다른 증거를 더 제시할 수 있다. 모든 개체들은 대개 같은 유전자를 공유하지만, 진화가 예측하듯이, 서로 다른 종들이 지닌 유전자와 그 산물들은 종들간의 진화적 유연관계에 상응하여 조금씩 다르다. 유전학자들은 이러한 흔적으로부터 시간의 추이를 유추할 수 있는 "분자 시계"라는 개념을 고안했다. 이들 분자 데이터로부터 어떻게 갖가지 생물종들이 진화라는 변천을 겪어왔는지 알 수 있다.   

14. 생명체는 해부학적, 세포적, 그리고 분자 수준 모두에서 그야말로 환상적으로 복잡다기한 특질들을 보여준다. 이들은 조금이라도 덜 복잡하거나 덜 정교했다면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을 특질들이다. 신중하게 내릴 수 있는 유일한 결론은 이들 특질들이 진화가 아니라 지적 설계(intelligent design)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 "설계에 의한 논증""은 진화를 공격하는 최신 흐름에 근간을  이룬다. 그러나 이 논증은 가장 구닥다리 논증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1802년에 신학자 윌리엄 페일리(William Paley)는 길을 가다가 지갑을 주웠다면, 가장 합리적인 설명은 누군가 그 지갑을 떨어뜨렸다는 것이지 어떤 자연적인  힘을 그 지갑을 만든게 아니라고 저술했다. 마찬가지로, 생명체의 복잡한 구조는 성스러운 개입이 직접적으로 빚어서 만들어낸 작품임에 틀림없다고 페일리는 주장했다. 다윈은 페일리의 논증에 대한 일종의 대답으로 [종의 기원]을 썼다. 다윈은 유전되는 특질에 작용하는 자연선택이라는 힘이 어떻게 정교한 생명 구조를 점진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지 설명해냈다.  


창조론자들은 누대에 걸쳐서 다윈을 반박하려고 애썼다. 그들은 진화했다고 보기 힘든 구조의 일례로서 눈을 즐겨 인용한다. 이들 비판자들에 따르면, 눈이 사물을 볼 수 있으려면 그 각 부분들이 완벽하게 배열되어있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눈이 최종적으로 진화하는데 필요한 일련의 중간단계들이 자연선택에 의해 만들어졌으리라고 볼 수 없다--절반만 기능하는 눈이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이러한 비판을 예견하여, 다윈은 "불완전한" 눈일지라도 상당한 이득을 줄 수 있으므로 (예컨대 빛이 희미하게나마 있는 쪽으로 개체를 이동하게끔 돕는 것) 계속 살아남아 후에 진화적으로 더 정교화되었으리라고 제안하였다. 후대의 연구들은 다윈이 옳았음을 보여주었다. 생물학자들은 동물계 전체를 통해서 원시적인 눈이나 빛의 존재여부만 인식하는 시각기관이 광범위하게 존재함을 보였으며 비교유전학 연구를 통해서 눈의 진화역사를 밝혀내기까지 했다. (오늘날 여러 동물과(科)에서 눈은 독립적으로 여러번 발생한 것으로 여겨진다) 

현대의 지적설계론자들은 그들의 선배들보다 좀더 정교하게 주장을 펼치지만, 그 목표나 논증은 결코 다르지 않다. 그들은 진화이론이 현재의 생명현상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며 비판하면서, 따라서 유일무이한 대안은 생명이 지능적인 어떤 존재에 의해 설계되었다 믿는 것이라고 강변한다.
 


15. 최근의 발견들에 따르면, 미시적인 수준에서조차도 생명은 진화에 의해서 도저히 만들어질 수 없는 정도의 복잡성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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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은[다윈의 블랙박스: 진화에 대한 생화학적 도전]의 저자인 르하이 대학의 마이클 비히(Michael Behe)가 주창한 개념이다.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의 간단한 예로, 비히는 쥐덫을 든다. 구성 부품들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온전히 기능할 수 없으며, 각각의 부품들이 전체를 구성하는 한 부분 이외에는 어떤 가치도 없는 경우를 말한다. 비히에 따르면 쥐덫에 들어맞는 논리는 박테리아의 편모, 즉 마치 바깥에 달린 모터처럼 몸을 앞으로 나가게 하는데 쓰이는 채찍 모양의 세포소기관을 설명하는데도 잘 들어맞는다. 편모를 구성하는 단백질들은 모터의 구성부품으로 잘 기능하게끔 기가 막히게 배열되어 있으며, 이는 공학자들이 쉽게 판별해낼 수 있는 조인트와 기타 다른 구조들로 이루어져있다. 이처럼 빈틈없이 짜여진 구조가 진화적 변형에 의해 서서히 다듬어졌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비히나 다른 지적설계론자들은 주장한다. 비히는 혈액의 응고 메커니즘이나 다른 분자 시스템에 대해서도 비슷한 논증을 펼쳤다.   


그러나 진화생물학자들은 이러한 반박에 대해 답변할 수 있다. 첫째, 비히가 인용한 편모보다 더 단순한 구조를 지닌 편모들이 실제로 존재한다. 따라서 편모가 작동하기 위해서 그 모든 구성요소들이 반드시 한꺼번에 있어야할 필요는 없다. 브라운대학의 케네쓰 밀러와 그외 다른 이들이 지적했듯이, 편모가 지니는 정교한 구성요소들은 자연계에 이미 그 선행 구조들을 발견할 수 있다. 사실은, 편모의 구조 전체는 Yersinia pestis라는 선페스트균이 독소를 세포내로 주입할 때 쓰는 구조와 대단히 유사하다. 
 
 

중요한 사항은, 비히에 따르면 박테리아를 추동하는 역할 외에는 다른 어떤 기능도 없다는 편모의 구성요소들 각각이 실은 진화과정상 또다른 기능을 수행했을 수도 있으며 따라서 그 각 부품들의 진화가 그리 어렵지 않았으리라는 것이다. 편모가 최종적으로 진화하는데는 이미 다른 목적을 위해 진화한 각각의 정교한 부품들을 새로이 짜맞추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샌디에고 소재 캘리포니아대학의 러셀 둘리틀에 의하면, 혈액 응고 시스템도 사실은 소화를 하는데 쓰이게끔 진화한 단백질들을 응고라는 새로운 목적에 맞게 조금씩 바꾸고 다듬는 과정에 의해 진화했을 것이다. 따라서 비히가 지적 설계의 증거로 내세운 환원불가능한 복잡성는 결코 환원불가능하지 않다.


"지정된 복잡성(specified compleixity)"이라는 또다른 류의 복잡성이 있는데, 이는 베일러 대학의 윌리엄 뎀스키가 그의 책 [설계 추론(The Design Inference)]와 [공짜 점심은 없다(No free lunch)]는 책들에서 펼친 저적 설계 논증의 핵심이다. 기본적으로 그의 논증은 생명체는 방향이 없는 무작이적인 과정으로 결코 만들지 못하는 방식으로 복잡하다는 것이다. 뎀스키에 따르면, 유일한 논리적 귀결은 어떤 초인적인 지성이 생명체를 창조해서 다듬었다는 것이다. 200년전 페일리의 논리를 연상케 하지만 말이다.

뎀스키의 논증은 몇가지 허점을 지니고 있다. 우리가 선택가능한 설명이라곤 무작위적인 과정 아니면 지적인 설계자 둘 뿐이라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산타페 연구소나 다른 기관에서 비선형 시스템이나 세포 자동자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단순하고 비정향적인 과정이 지극히 복잡한 패턴을  낳을 수 있음을 입증하였다. 그러므로 생명체가 보이는 복잡성 가운데 일부는 우리가 아직 극히 일부만 짐작하고 있는 자연 현상에 의해 생겨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말은 복잡성이 자연히 일어날 수는 없다는 말과 천지차이이다.

"창조과학"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모순적인 용어이다. 현대 과학의 중핵은 방법론적 자연주의이다. 즉 과학은 우주 만물을 오직 관찰되거나 검증가능한 자연 메커니즘으로만 설명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물리학은 원자핵을 설명할 때 이를 물질과 에너지를 관할하는 어떤 특정한 개념으로 서술하며, 이러한 서술을 실험적으로 검증한다. 물리학자들이 쿼크와 같이 새로운 입자를 도입하는 경우는 오직 기존의 서술이 관찰된 현상들을 적절하게 설명하지 못할 때 뿐이다. 뿐만아니라, 이러한 새로운 입자가  자의적인 특성을 지니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새로운 입자들에 대한 정의는 매우 꼼꼼하고 상세히 확정된다. 왜냐하면 이러한 새로운 입자들이 물리학의 기존 개념틀과 합치해야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지적설계 이론가들은 당장의 미스터리를 해결하기에 필요한 능력은 무한정 지니고 있다고 편리하게 상정되는 애매모호한 개념들을 끌어들인다. 과학적 탐구작업을 확장하기는 커녕, 지적설계론이 제공하는 이러한 해답들은 오히려 과학적 탐구작업을 훼방놓는다. (어떻게 전능한 지성의 존재를 반증할 수 있겠는가?)  
  
  

지적 설계론은 해답을 제공해주지 못한다. 예를 들어, 지적인 설계자가 생명의 역사에 언제부터 어떻게 개입하였는가? 최초의 DNA를 창조함으로써? 최초의 세포를 창조함으로써? 최초의 인간을 창조함으로써? 모든 생물종이 창조주에 의해 설계되었는가, 혹은 최초의 몇몇 종들만 설계되었는가? 지적 설계 이론을 주창하는 이들은 종종 이러한 사항들에 대해 명확히 대답하기를 거부한다. 그들은 지적 설계에 대한 이러한 갑론을박들을 서로 화해시켜 하나로 모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경쟁 이론을 배제함으로써 자기 이론을 내세우려고 애쓴다. 즉, 진화적 설명이 불완전하거나 터무니없다고 격하시킴으로써 설계에 기반한 자신들의 대안만이 남게되는 것인양 암시를 주려고 한다.


논리적으로 이는 틀렸다. 어떤 자연주의적 설명 하나가 틀렸다는 말이 자연주의적 설명은 몽땅 틀리다는 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또한 (어떤 자연주의적 설명 하나가 틀렸다는 말이) 지적설계론을 더 타당하게 만들어주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허점들을 청중은 알아서 메꾸도록 은연중 요청받게 되며, 말할 필요도 없이 청중은 과학적 사고 대신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그 구멍들에 메꿔넣는다.
  

과학자들은 방법론적 자연주의를 통해 무지를 밀어냈을 뿐만 아니라 예전에는 답하기 불가능하리라 여겨졌던 미스테리들- 빛의 속성, 질병의 원인, 두뇌의 작동 기전 등등-에 대해 점점 상세하고 유익한 답변을 제공해왔다고 역사는 말해준다. 진화론은 어떻게 생명체가 오늘날과 같은 형태를 띠게 되었는가라는 수수께끼를 놓고 그 해법을 찾는 작업을 수행하는 과학이다. 어떤 이름으로 불리건간에, 창조론은 이같은 노력에 조금이라도 지적인 공헌을 전혀 하지 못한다.  

 

 

출처 : http://evopsy.egloos.com/

출처 :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6&dirId=609&docId=116517407&qb=6rCA7KCVIG5hcw==&enc=utf8&section=kin&rank=3&search_sort=0&spq=1&pid=g5SvYg331xRssbvfpQlssv--033404&sid=TJVDvfLTlEwAAGDSjBw


지식인에 올라온 글이 너무 좋아서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