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사는 이야기/이야기들

[퍼온글입니다] 이 글도 공감가는군요....

"대한민국에는 SW가 없다"의 저자 김익환
  

'대한민국에는 SW가 없다'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책 한권이 지난해 말 출간된 이후 IT 업계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과연 우리나라는 IT강국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시작한 이 책은 그 누구도 반론을 제기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산업의 현실을 솔직히 꼬집고 있다.

소프트웨어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의 잘못, 그리고 그 잘못의 상당부분이 소프트웨어로 먹고 사는 기업들 스스로에게 있다는 부분을 지적한 이 책은 솔직한 자기 진단이자 반성문이고, 또한 새로운 SW 개발문화를 위한 제안서이기도 하다.

저자 김익환씨는 "책에서 지적한 내용은 이미 모두가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던 것들이다. 새로운 이론을 제시한 것도 아니고, 다만 문제가 어디에서 비롯됐고 어디부터 고쳐야 하는지를 현실의 사례를 들어 제시한 것이다"고 말한다.

그는 또 "잘못된 부분을 조금만 고치면 우리는 훌륭한 SW를 만들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아쉬움이 컸다"며 "컨설턴트로서 몇몇 기업들을 만나 컨설팅을 해오다가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책을 쓰게 됐다"고 책 출간 배경을 설명했다.

김익환씨는 56년생으로 서울공대를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 산호세 주립대학에서 컴퓨터공학 학사, 스탠포드대학에서 컴퓨터공학 석사를 취득하고 GE, 썬마이크로시스템즈 등에서 IT 실무경력을 쌓았다.

이후 약 6년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소프트웨어 업체를 설립, 제품 개발과 최고경영자로서 회사를 운영하기도 했다. 현재 미국에 컨설팅 업체 ABC테크를 설립,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컨설턴트로 지내고 있다. 국내에서는 안철수연구소의 경영고문을 맡고 있기도 하다.

그는 왜 '우리나라에는 SW가 없다'라는 평가를 내렸는가. 저자를 만났다.

'SW는 없다'라는 도발적인 문제제기를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산업의 현실이 그토록 절망적인가.

"'없다'라는 말은 반어법이라고 보면 된다. 바보한테는 바보라고 하지 않는다. 만일 절망적이고 고칠 수 없는 것이라면 '없다'라는 얘기는 아예 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과 비교해도 우리나라는 많은 부분에서 준비가 돼 있었다. 다만 몇가지만 고치면 될 텐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에 책을 쓰게 된 것이다. 경영자나 개발자들을 일일이 만나서 컨설팅을 할 수도 있겠지만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부분을 알리고 싶었고, 또 파급효과도 크지 않을까 해서 책을 썼다. 우리나라 개발자들은 지식은 뛰어나다. 방법론이나 소프트웨어 공학론,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관련 지식 등은 다 갖고 있다. 단지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경험의 부족이 안타까운 부분이다."

첫장에서 '소프트웨어는 기술이 아니라 문화'라고 강조했다. 이 말은 책 전체를 관통하는 화두인 것 같다. 문화적 특성 때문에 우리나라 소프트웨어가 미국이나 인도에 비해 떨어진다면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말인데, 문화란 쉽게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면 근본적으로 우리가 소프트웨어 개발에 있어 선진국에 비해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얘긴가.

"소프트웨어 개발의 차원에서 볼 때 그렇다는 얘기다. 미국과 비교해 소프트웨어 개발문화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역사가 짧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지만 바꿀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책에서도 태권도의 예를 들었는데, 미국 책방에 가보면 태권도에 관련된 책이나 비디오가 수없이 많다. 하지만 미국사람이 우리보다 태권도를 잘하는가. 그렇지 않다. 그건 지식이 모자라서가 아니다. 소프트웨어와 태권도는 비슷한 점이 있다. 둘 다 표면적인 기술보다는 근본적인 가치를 문화적인 환경에서 찾아야 한다. 집에서는 절대 태권도를 배울 수 없다. 깡패들이 산에 가서 합숙훈련하면서 배운다 해도 마찬가지다. 기술만있지 올바른 문화가 없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도 마찬가지다. 소프트웨어의 올바른 문화는 엄격한 훈련과 규칙에서 나온다. 올바른 문화 아래서 배우지 않으면 정통파가 아닌 편법과 기술에만 치우친 사이비가 된다."

그럼, 올바른 문화를 이해하고 배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가장 좋은 방법은 가서 배우는 것이다. 태권도를 배우기 위해 좋은 사범을 찾아가는 것과 같다. 결국은 교육인데, 교육은 단순히 지식을 가르치는 교육이 있고 실습과 또 간접 시뮬레이션 교육이 있다. 우리에겐 실습과 간접 시뮬레이션 교육이 더 필요하다. 경험있는 전문가들이 지금보다 더 필요하고 또 이들을 통해 제대로 실습과 시뮬레이션 교육을 받는 것이다."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개발 문화에서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빨리 하려는 것이다. 개발을 하는데 필요한 순서를 일일이 정해줘도 못한다. 이유는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개발 전에 사양을 파악하고 디자인과 설계를 제대로 하라는 이유는 바로 시간을 절약하기 위한 것이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방법론을 제대로 쓰라고 하는데 시간이 없어서 못한다고 한다. 이론으로는 잘 알고 있지만, 현실론을 자꾸 들이댄다.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개발은 SI업체들이 주도하는데, 그들은 우리나라 시장은 가격경쟁이 심해서 제대로 방법론을 쓸 형편이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내가 볼 때는 그렇기 때문에라도 제대로 된 방법론을 적용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 책에서는 우리나라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도 지적한 부분이 있다. 정부의 정책과 관련해 아쉽다고 생각하는 점은 어떤 것인가.

"소프트웨어 강국이 되려면 각각의 주체 별로 역할이 있다. 그 중에 정부나 학계, 업계에서 해야 할 역할이 따로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부분은 내가 말할 주제는 아닌 것 같다. 그 쪽으로는 지식도 부족하고, 나는 개발자 출신으로 개발 그 자체 문화에 대해서만 말하고 싶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시장 자체가 튼실하고 정책적 지원도 제대로 갖춰졌다는 전제 아래 기초가 튼튼하면 좋은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또 정책과 관련해 책에서 지적한 부분은 최종 결과물을 상용화하는 부분에서 느낀 아쉬움을 얘기한 것이다. 정부의 정책은 이론적으로는 손색이 없다고 본다. 사실 정책과 관련해 현장에서 듣는 얘기는 정책 차제의 문제라기보다 과정에서 벌어지는 비리 차원의 얘기여서 정책의 문제라고 지적할 만한 것은 아니다."

- 업계에서도 흔히 하는 말이 우리나라 개발자들은 코딩 실력 만큼은 세계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어떻게 보는가.

"코딩 실력은 뛰어난 것이 맞다. 하지만 코딩은 문화가 아니라 기술이다. 그런데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코딩 외에 횡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개발 사양에 대한 고려부터 디자인, 설계 작업 등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다. 이런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것을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문화가 문제다."

- 미국의 개발 문화는 진짜로 그렇게 철저한 방법론을 요구하는가.

"미국에서도 개인적으로 뭔가를 개발한다면 그렇게 안할 것이다. 한번 소프트웨어 하나 만들어 끝나는 것이라면 그냥 코딩해서 결과만 나오면 만족할 것이다. 하지만 회사라면 그렇지 않다. 한번 만들어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업에서는 반드시 제대로 된 방법론을 요구한다. 그게 문화다. 소프트웨어 기업의 문화이고 기업에서는 다들 그렇게 한다. 사실 이러한 방법론은 책에 다 나와 있다.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하려고 해도 못하는 이유중에 하나는 책만 보고 그대로 하려는데 있다. 책 보고 쫒아하면 더 느리다. 책에서는 이론적으로 옳은 것 백가지를 다 적어놓았기 때문이다. 이걸 다 이론적으로 하려하면 문제가 된다. 중간에서 경험있는 사람이 판단을 내려야 한다. 이론과 현실의 중간점에서 타협을 해야 하는데 미국 소프트웨어가 튼튼한 기반은 이런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전문가가 많다는 것이다."

- 최근 유지보수료 현실화가 우리나라 SW업계의 이슈로 떠 올랐다. 유지보수료에 대한 가치 인식이 안되고 있는 부분도 결국 문화적인 문제에서 찾을 수 있는가.

"유지보수에 대한 가치 인식 부분은 진짜 문화의 차이라고 본다. 미국에서는 전화 통화로 컨설팅해도 돈을 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영업의 불이익 때문에라도 언감생심 그러지 못한다. 그런데 유지보수료를 받느냐 안받느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기업들이 유지보수료를 실제 안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애초 라이선스료에 유지보수료를 포함시켜 받고 있지 않은가. 그런 편법으로 갈 수 밖에 없다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그러지 않으면 SW기업이 살아남을 수 없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유지보수료의 현실화 문제는 쉬운 문제일 수도 있다. 어차피 라이선스료에 포함돼 있는 것이니까, 시간의 문제일 수 있다."

- 품질관리 부분도 우리나라 기업들이 약한 부분이다.

"이것도 우리 기업들이 시간을 절약한다는 명분으로 소홀히 하고 있다. 사양 설계, 디자인 설계 등 사전 작업도 안하고 일단 개발(코딩)이다. 개발 이후 품질관리도 시간을 핑계로 소홀히한다. 하지만 결국 시간을 더 낭비하게 된다는 것을 모른다. 착각이다. 개발 프로세스에 엄격한 규칙을 정해 운영해야 한다."

- 지금까지 설명도 어찌 보면 이론적인 지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 참고할 만한 모델 케이스가 있다면 좋을 것 같다.

"한 회사를 놓고 비교하기는 힘들다. 개발 프로세스의 정립이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향상시킨다는 것은 미국 소프트웨어 50년역사에서 검증되고 정립된 것이다. 그런 데이터는 찾아보면 많다."

- '소프트웨어는 없다'라는 것이 결국 우리에게 희망은 있다는 얘기라고 했는데.

"우리나라 개발자들이나 경영자들은 이론적으로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경험있는 사람이 없어 가르쳐주지 않으니까, 다들 혼자서 책으로 배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식이 풍부하다. 이론적으로 무장이 잘 돼 있기 때문에 금방 가르칠 수 있고 배울 수 있다. 조금만 고치면 된다는 것이다."

- 고친다면 누가 고쳐야 하는가, 개발자인가, 경영자인가.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문화에서 아쉬운 부분이 개발자들이 우대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누구든 개발자의 길을 가려하지 않을 것이다. 그게 힘들다. 기업이나 정부에서 신경을 써야 한다. 개발자도 기업에서 성공하려면 어느 시점에선가 관리자가 돼야 하는게 우리 기업문화다. 아직도 남아 있는 사농공상 문화가 아닌가 싶다. 이를 바꿔야 한다. 그러기 전에는 개발방법론이 아무리 좋아도 힘들다.

이런 점에서 역시 최고경영자의 인식 변화가 절실하다. 관리 전문가가 아니고 기술 전문가의 중요성을 알아야 한다. 돈만 있으면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수 있다는 생각은 넌센스다.

개발자가 '내가 떠나면 회사는 끝장'이라고 생각한다면 정말 문제다. 개발자 한 사람이 떠났다고 제품 개발이나 유지보수가 안된다면 그 개발자는 기업으로서는 언제 터질 지 모르는 핵폭탄같은 사람이다. 개발자가 필요한 이유는 미래의 새로운 제품을 위해서다. 지금은 없어도 되지만, 미래의 제품이나 미래의 기여도를 생각했을 때 필요한 개발자가 진짜 필요한 개발자다. 이는 개발 시스템의 문제다."


  
김상범기자 ssanba@inews24.com
2004년 03월 28일